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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초 동료교사 4.24 집회 발언 전문

story3001 2025. 5. 2. 10:29

(이동원: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김동욱선생님과 함께 근무했던 학산초 교사들입니다. 김동욱선생님이 떠나고 벌써 반년이 흘렀지만 아무 결론도 내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여전히 지치지 않고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죄송함의 인사를 먼저 드립니다. 발언 시작하겠습니다.) 

 

(송민섭: 저희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김동욱이 선생님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저희 곁을 떠났는지, 어떤 시간을 거쳐 그 날에 이르렀는지를요. 저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2024년 선생님과 마주했던 대부분의 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밝았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던 나날들을 저희는 사진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전의 선생님께 들었던 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겠습니다. ‘살아있으면 내일 만나요.’, ‘어떻게든 되겠지요.’, ‘이럴 거면 학생 수를 왜 줄인 거냐고’, ‘남교사라서 그런 거래요’, ‘주말 내내 학교에 있었어요’, ‘요즘은 하루에 한끼도 먹기 싫어요’, ‘왜 다른 학교는 다 괜찮은데 학산초만 힘드녜요..’, ‘+1은 없는 사람 취급하래요’, ‘매 수업 소리 지르는 애를 위해서 고함 항아리를 만들라는데요?’, ‘협력강사 구하고 있어요.’, ‘예산 내용은 전혀 안 알려주고 일단 뽑으라고만 하더라고요.’, ‘어떤 학교에서는 한시적 기간제 지원해줬대요. 왜 나만 안되지?’, ‘2학기 장학사한테 다시 말해볼까요?’, ‘매일 맞고 있어요.’, ‘학생들 앞에서 너무 수치심이 들어요.’, ‘일반선생님들은 교권 침해라도 거는데 저는 매일 맞아도 뭘 할 수 있죠?’, ‘사람이 필요해요.’, ‘형 심장이 계속 뛰는 데 안 멈춰요.’, ‘차라리 제가 두 명이었으면 좋겠어요.’, ‘형..제가 죽으면 바뀔까요?’
모두가 알다시피 고인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살아있는 저희들이 듣고 본 모든 일들이 고인의 침묵 속에도 저희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교육청에 수차례 지원을 요청했고, 애매한 바람이 아니라 한시적 기간제라는 분명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일반학급을 운영하는 저희들도 일 년 내내 한시적 기간제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습니다. 여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까?)

 

(김철범: 그럼에도 저희는 궁금합니다. 대체 어떤 과정으로, 어떤 사정으로 선생님이 내몰려야했는지, 선생님을 고립시킨 제도란 것은 어떤 근거였는지, 선생님을 외면했던 자들은 누구였는지 말입니다. 규정이라는 말로 눙치고 지나갔던 그 많은 거절들로 한 사람의 교사가 사망했습니다.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 특히나 특수학생들이라는 존재는 결코 숫자로만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요. 한 명만으로도 지도가 어려운 학생들을 그리도 많이 몰아넣고 한 사람의 교사에게 무엇을 요구했던 건가요? 종일 녹초가 되도록 학생들을 관리하고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특수교육으로 도배될 만큼 고민하고 연구했던 사람입니다. 일이 벅차 나눌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학생 관리가 온전히 이뤄지기를 바랐던 교사였습니다. 여기에 셈이 필요합니까?

 

저희는 그러한 사투들을 제쳐두고 교육청이 골몰하는 사업을 아주 잘 알고 있지요. 혹시 계획된 예산이 부족했다면 저희는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읽고 걷고 쓰는 것이 살고 죽는 것보다 중요하다면, 읽지도, 더러 걷지도 쓰지도 못하는 교실은 무엇으로 돌아갑니까?
저희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부터 파악할 것을 조언합니다. 원인을 묻어둔 해결책을 저는 생각하지도, 믿지도 못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사망 후에 교육감 간담회를 거쳐 저희는 이러한 진상이 규명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교육감님의 말씀은 엄중하고 단단해보였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 문제로 홍역을 치렀을 때도 일의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 생각했습니다. 해를 넘겼지만 올해 2월 안으로 끝내겠다는 기사를 보고 마지막 희망을 가졌습니다. 아무 결론없이 새학기가 시작되었고 지금은 5월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서제하: 김동욱선생님이 떠난 자리에 지금은 두 분의 선생님이 분투하고 계십니다. 여전히 힘든 학생들을 맡아 여전히 아침에는 손을 잡아끌고 교실에 데려다주고, 여전히 쉬는 시간에는 쉬지 않고 찾아와 아이들을 살피며, 여전히 점심시간에는 아이가 온전히 밥을 먹도록 본인들은 애를 먹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나날에도 두 분이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고 토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단순히 업무를, 아이들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온전한 의미 그대로의 협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희는 김동욱선생님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저희보다 먼저 그것을 알고 있었고, 분명하게 요구했던 것입 니다.
지난 10월, 김동욱선생님은 우리 동욱이가 아니라 특수교사 A가 되었습니다. 저희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호칭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유족분들의 용기로 언론의 보도에서 A가 다시 김동욱이란 이름 찾았을 때, 저희는 다시 특수교사 B와 C, D와 E가 등장하지 않는 세상을 희망할 수 있었습니다. 김동욱선생님의 희생은 너무나도 가슴 아프지만 생전의 말대로 그가 교육계의 변화를 이끌어 낸 한알의 밀알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육청은 다시 그를 특수교사 A로 만들고 있습니다. 교사가 바뀌고 학급은 또 누군가의 안간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변한 것은 선생님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없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교육감님, 교육감님께서는 그 교실이 다른 누군가로 채울 수 있는 자리일지 모르지만, 저희에게는 둘도 없는 동료가 지내고, 지켜온  곳이었습니다. 교육감님의 '의도'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교육감님의 '의지'는 충분히 의심됩니다. 지금은 그 의지없음이 의도를 의심하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인천 교육의 수장으로서, 어른으로서, 한때 현장에 몸담았던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더는 기대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한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으시다면,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한이란 게 있으시다면 이 사안에 더는 여유를 갖지 마십시오. 저희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